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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형사사건

[김채영 변호사]사기와 채무불이행의 구별기준

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도8829 판결【사기】
吳 英 根


I. 사실관계 및 재판의 경과

피고인은 중국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N담배를 생산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K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사람이다. K회사는 2006.경부터 운영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금융기관들부터 대출받은 11억원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연체된 세금이 약 4, 5억원에 이르는 반면 별다른 재산이나 수입이 없어 사무실 임대료조차 지급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①2008. 4. 29.경 K회사 부사장으로 채용되어 투자유치 및 대리점 모집 등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던 피해자 A에게 “돈을 구해 왔느냐, 부사장이면 능력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임대료를 못내서 그러니 돈을 빌려 주면 빠른시일 내에 갚겠다”고 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합계 2천만원을 교부받았고, ②2008. 10. 5. K회사 재무담당 상무로 채용되어 근무하고 있는 피해자 B에게 “S회계법인 300억원 투자유치가 차질이 생겼으니 사채 100억원을 끌어와야 한다, 사채를 끌어 오지 못하면 우선 사무실이라도 옮겨 놓아야 최상무의 얼굴이 서지 않겠느냐, 일단 5천만원을 빌려 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투자금을 받는 대로 1개월 내에 상환하여 주겠다”는 취지로 말을 하고 두차례에 걸쳐 합계 5천만원을 교부받았다.
피고인은 A, B에 대한 사기죄로 기소되었다. 제1심과 항소심은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8. 24. 선고 2009고단7963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6. 9. 선고 2010노3411 판결).
피고인이 상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 합의부로 환송하였다(피고인은 2008. 6. 12. 피해자 C에게 N담배 판매권을 제공하기로 하고 합계 7,300만원을 교부받았다는 이유로도 기소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II. 판결요지

[1]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기망, 착오,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한편 어떠한 행위가 타인을 착오에 빠지게 한 기망행위에 해당하는지 및 그러한 기망행위와 재산적 처분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거래의 상황, 상대방의 지식, 성격, 경험, 직업 등 행위 당시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여 일반적·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재산적 처분행위나 이러한 재산적 처분행위를 유발한 피고인의 행위가 피고인이 도모하는 어떠한 사업의 성패 내지 성과와 밀접한 관련 아래 이루어진 경우에는, 단순히 피고인의 재력이나 신용상태 등을 토대로 기망행위나 인과관계 존부를 판단할 수는 없고,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당해 사업에 대한 피해자의 인식 및 관여 정도, 피해자가 당해 사업과 관련하여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게 된 구체적 경위, 당해 사업의 성공가능성, 피해자의 경험과 직업 등의 사정을 모두 종합하여 일반적·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2] K주식회사 운영자인 피고인이 회사 운영이 어려워 돈을 차용하거나 투자를 받더라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회사 운영자금 명목으로 돈을 차용하여 편취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피해자들은 부동산 중개업자 또는 은행지점장 출신으로 K회사에서 부사장으로 행세하거나 자금담당 상무로 근무하면서 자금조달 및 투자유치 등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여 왔으므로 그 과정에서 K회사나 피고인이 타인으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한 자력으로는 대여금을 변제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리라고 보이는 점, 자금담당 상무로 근무하던 피해자가 임원진 선임을 둘러싼 의견대립으로 고용계약을 해지하면서 K 회사의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겼고, 피해자들로부터 차용한 돈은 K회사의 운영경비 등으로 사용된 점 등 피해자들의 경험과 직업, 피해자들이 K 회사에 대여한 자금의 용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기망하였다거나 피고인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이 착오에 빠져 어떠한 재산적 처분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 없는데도, 이와 달리 보아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III. 평 석

1. 항소심판결의 논거
항소심법원은 ①피해자 A는 피고인이 돈을 빌려주면 빠른 시일 내에 갚겠다고 하여 피고인에게 합계 2천만 원을 교부하게 되었고, 그 후 피고인으로부터 2008. 11. 30.경까지 위 2천만 원을 변제하겠다는 차용증을 받기도 한 점, ② 피해자 B는 피고인이 사무실 이전비 등으로 5천만 원을 주면 1개월 이내에 상환하여 준다고 하여 합계 5천만 원을 교부하게 되었고, 피고인이 2008. 10. 6. 피해자 B에게 2008. 11. 20.까지 위 5천만 원을 변제하겠다는 차용증을 작성하여 주기도 한 점, ③ K회사는 금융기관에 총 11억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2. 대상판결의 논거
대상판결은 ①피해자 A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자로서 K회사의 공장부지 매입을 중개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을 알게 되었는데, 2008. 4.경부터 K회사의 부사장으로 행세하면서 K회사의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고, ②이후 K회사와 S회계법인간의 금융자문계약 체결을 주선하였고, ③A와 L, M 등 3인은 2008. 5. 26.경 피고인과 업무약정을 체결하였는데, 위 업무약정에 의하면 위 3인 중 1인이 K회사의 자금을 유치할 경우에는 10%를 성과급으로 지급받을 수 있었고, ④A는 2008. 7. 10.경 위 업무약정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받았고, ⑤은행 지점장 출신인 피해자 B는 A의 소개로 피고인과 K회사의 자금조달과 투자유치를 책임지기로 하되 봉급과 성과급을 받는 내용의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2008. 9.말경부터 K회사의 자금담당 상무로 근무하였고, ⑥2008. 10.경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하여 자금조달이 가능하게 되자, 자신을 새로 설립될 법인의 대표이사로, 자신의 남편을 이사로, 남편의 친구를 감사로 선임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이 이를 거절하자 위 고용계약을 해지하였고, ⑥이로 인해 K회사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게 되자, A, B는 K회사에 대여하였던 자금에 대하여 피고인으로부터 그 명의의 차용증을 교부받았고, ⑧ K회사가 위 피해자들로부터 차용한 돈은 K 주식회사의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경비 등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정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대상판결은 ①A, B 모두 스스로 K 주식회사의 투자유치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K회사나 피고인이 타인으로부터 투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한 자력으로는 대여금을 변제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었으리라고 보이고, ② B가 의견대립을 극복하고 고용계약을 계속 유지하였더라면 B가 자금조달을 성사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나아가 그와 같이 조달된 신규 투자금으로 위 피해자들에 대한 대여금을 변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으리라고 보이고, ③ 피해자들의 경험, 직업과 위 피해자들이 K회사에 대여한 자금의 용도 및 피고인이 위 피해자들에게 차용증을 교부하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보면 A, B가 착오에 빠져 처분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3. 평가
대상판결은 사기죄에 대해 어떤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것은 아니고, 사기죄의 해당여부에 대한 사실인정에 관한 것이다. 채무불이행에서 채권자들은 채무자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채무자가 구속이라도 된다면 채권자는 신속하게 채무의 전체 또는 일부를 변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나 법원도 채무액이 큰 경우에는 대부분 피고인에게 차용금결제의 의사 또는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였다. 이러한 실무관행으로 당연히 사기죄로 처벌되어야 할 악덕채무자가 처벌되기도 하지만, 종종 억울한 채무자가 생겨나게 된다(이를 ‘결과적 사기범’이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고소율이 일본의 10배가 넘는 이유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소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민사의 형사화현상’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이 법조인사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민사의 형사화현상’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되고싶은 데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판결은 채무불이행을 넘어 사기죄가 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