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21일 헌법재판소(헌재) 소장에 박한철 현 헌법재판관을, 빈자리인 헌법재판관에 조용호 서울고등법원장과 서기석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명했습니다. 헌재는 이강국 전 소장이 물러난 지 두 달가량 소장 없이 재판관 8명이었으며, 지난 22일 송두환 소장 권한대행마저 물러남으로써 지금은 소장도 없고 재판관도 7명입니다.
헌재는 헌법 111조에 따라 법관 자격을 가진 9명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니 지금 헌재는 헌법에서 정한 재판관 수에 모자랍니다. 헌법을 지켜내야 할 헌재가 재판부 구성부터 헌법을 어긴 상태로 있습니다. 헌재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위헌 결정을 이끌어 내야 하는 사건일 때, 헌법재판관이 모자라면 그만큼 위헌 결정을 받기 어렵습니다. 헌재는 재판부 구성이 위헌인 상태에서도 결정을 냅니다. 재판관 구성이 위헌인데, 위헌상태의 재판부가 낸 결정은 합헌인가요?
실제 간통죄 위헌 여부를 다투는 헌법심판 결과는 헌법재판관 수에 따라 결론이 뒤바뀔 가능성이 많습니다. 간통죄는 성 자기결정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4차례 헌재의 판단을 받았지만 결과는 모두 합헌이었습니다. 가장 최근 2008년에는 위헌 5 : 합헌 4로 헌법재판관 다수가 위헌 판단을 내렸으나 위헌정족수(6명)에 이르지 못해 합헌으로 살아 있습니다. 다음 심판에서 위헌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심판에서 위헌 의견을 가졌을지 모를 재판관 한 사람이 빠진 채 8명으로 재판부가 구성된다면, 결과가 ‘위헌 5 : 합헌 3’이라도 여전히 합헌으로 남습니다. 이런 경계 상황에 놓인 사건이 있다면 당사자는 어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합니까?
기사를 보면 송두환 재판관은 임기 6년 동안 헌법소원 등 1,189개 사건의 주심을 맡아 처리했다고 합니다. 6년 동안 휴일을 뺀 근무일을 개략 1,500일로 볼 때, 그 기간에 1,189건 주심을 맡았습니다. 이것은 하루 0.8건 5일에 4건 정도입니다. 헌법심판은 변호사 강제주의가 적용되고, 사안이 중대하므로 쉽사리 헌법심판을 걸지 못합니다. 심판 참여도 아니고 저렇게 많은 사건에서 주심을 맡았다니 그 능력이 새삼 돋보입니다. 주심을 맡은 사건 말고도 다른 사건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그 많은 사건을 언제 어떻게 모두 검토하고 위헌 여부를 판단했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헌법재판관은 정말 그 많은 사건을 자세히 검토하고 스스로 판단할까요?
사건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는 정황은 사례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11년 12월 29일 2010헌바459 사건을 선고하면서 결정 이유로 “해당 상표권이 무효가 확정되어 헌법소원심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표권 침해사건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판 전제성이 없으므로 각하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헌재는 상표무효소송이 일반 민사소송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해당 상표는 무효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특허법원에서 무효 여부를 다투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자유칼럼 2012년 01월 04일 ‘헌재의 어이없는 결정, 그리고’ 참조).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관 8명 모두가 의견이 같았다 하니, 각 재판관이 직접 사실을 확인하고 판단했다고 믿기 어렵습니다. 헌법심판이 이렇게 처리된다면 국민이 이를 믿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헌법은 우리 사회의 가치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규율하는 마지막 선입니다. 우리 사회의 관점이 다양합니다. 헌법재판관에 법관 자격을 가진 사람만 임명토록 한 것은 곤란합니다. 헌법을 개정할 때 법관 자격으로 제한한 것을 빼는 게 좋겠고, 개정하기 전이라도 우리 사회의 보편성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을 포함시켜야 하겠습니다.
인사청문회가 끝나 정식 임명할 때까지 헌재 계속 위헌 상황입니다. 헌법을 지켜야 하는 헌법재판소가 위헌 상태에 있든 말든 걱정하는 사람이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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